의료기기 해외 설치 검수: 납품 완료와 사용 준비를 구분하는 법
수출 의료기기의 납품 완료와 사용 준비는 서로 다른 기준이 정합니다. Incoterms 위험 이전, CISG 검사·하자 통지, 미국·EU·일본의 설치 기록 요건, K-IFRS 매출 인식을 비교하고 계약서에서 따로 정할 항목을 정리합니다.
독일의 한 대학병원에 국내 제조사가 대형 영상진단 장비를 DAP(도착지 인도) 조건으로 수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운송사는 10월 2일 병원 하역장에 화물을 내릴 준비가 된 상태로 도착시켰고, 병원 물류 담당자가 인수 서명을 했다. 그러나 차폐 공사 마무리와 전원 증설이 늦어지고 현지 설치 업체의 일정까지 겹치면서, 장비 반입과 결선, 조정, 현장 인수시험은 10월 20일에야 끝났다.
이 상황에서 수출사 실무진은 네 가지 질문을 동시에 받는다. 계약상 '납품 완료'는 10월 2일인가, 10월 20일인가? 10월 20일 시운전에서 검출기 보드 결함이 나왔다면 병원은 언제까지 하자를 통지해야 하는가? 본사 회계팀은 이 장비 매출을 어느 날짜에 인식해야 하는가? 같은 장비를 미국이나 일본의 유통 파트너에게 팔았다면 설치 단계에서 어떤 규제 기록을 남겨야 하는가?
인도는 어디서 끝나나: Incoterms가 말하는 '납품 완료'
수출 계약에서 혼동하기 쉬운 지점은 무역 조건인 Incoterms의 '인도'와 현장 엔지니어링인 '설치 검수'를 같은 것으로 보는 데 있다. DAP나 DDP로 계약하면 매도인이 장비를 검사실 안까지 들여놓고 전원을 켜 정상 작동을 보여 주는 것까지 인도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규칙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아카데미의 해설에 따르면 DAP에서 매도인은 물품이 합의된 목적지에서 도착 운송수단에 실린 채 내릴 준비가 된 상태로 매수인의 처분 아래 놓일 때 인도하고 위험을 이전한다. 하역은 원칙적으로 매수인이 자기 위험과 비용으로 한다. DDP도 인도와 위험 이전 지점은 같고, 차이는 매도인이 수입 통관까지 맡는다는 데 있다.
같은 해설은 Incoterms 규칙이 정하는 범위를 인도 장소와 위험 이전, 비용 분담, 운송 계약 주체, 보험(CIP·CIF), 수출입 통관, 포장·화인·품질 증명 책임으로 설명한다. 장비 개봉, 검사실 반입과 안착, 유틸리티 결선, 조정과 성능 확인은 이 목록에 없다. 설치와 검수는 Incoterms가 아니라 매매계약의 별도 조항이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계를 계약서에서 나눠 두지 않으면 분쟁의 씨앗이 된다. 예를 들어 병원 하역장에서 DAP 인도가 끝난 뒤 병원 내부 운반 중에 장비가 충격을 받았다고 하자. Incoterms 기준으로 그 손상 위험은 이미 매수인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계약서 다른 곳에 '설치와 최종 시험이 끝나면 인도가 완료된다'는 문구가 섞여 있다면, 인도 시점과 위험 부담을 두고 해석 다툼이 생기고 대금 지급도 함께 멈출 수 있다.
물류 책임과 사용 승인을 나눠 보는 논리는 임상시험용 자재 수출에서 DDP·DAP와 수입자(IOR) 책임 분계점을 정리할 때와 같다. 운송 책임이 끝나는 사건과 장비를 써도 된다고 승인하는 사건은 서로 다른 일이다.
여기에 국제물품매매계약협약(CISG)이 겹친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현황표에 따르면 CISG 당사국은 97개국이고, 한국은 2004년 2월 17일 가입해 2005년 3월 1일부터 발효됐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도 당사국 목록에 있다. 영국은 목록에 없다.
CISG 제1조(1)(a)는 영업소가 서로 다른 체약국에 있는 당사자 사이의 물품매매계약에 이 협약을 적용한다. 제6조에 따라 당사자는 협약 적용을 배제하거나 개별 조항의 효과를 바꿀 수 있으므로, 배제하려면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 함께 볼 조항이 제3조(2)다. 물품을 공급하는 쪽 의무의 주된 부분이 노무나 용역 제공이면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 장비 대금이 중심인 거래라면 매매계약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설치·통합 용역 비중이 큰 턴키 계약은 적용 여부를 따로 검토해야 한다.
검사와 통지의 시계: CISG 38조·39조가 현장 지연과 만날 때
Incoterms상 인도가 끝나면 CISG의 검사·통지 시계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의료장비 수출에서는 이 시계가 병원 현장의 설치 지연과 부딪히기 쉽다.
제38조(1)은 매수인이 상황에 따라 실행 가능한 한 짧은 기간 안에 물품을 검사하거나 검사하게 해야 한다고 정한다. 운송이 수반되는 계약이라면 검사는 물품이 목적지에 도착한 뒤로 미룰 수 있다(제38조(2)).
제39조(1)은 더 엄격하다. 매수인이 부적합을 발견했거나 발견했어야 할 때부터 합리적인 기간 안에 그 성질을 특정해 매도인에게 통지하지 않으면, 부적합을 주장할 권리를 잃는다. 그러면 부적합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 대금 감액, 대체물·수리 청구, 계약 해제 같은 구제수단을 쓰기 어려워진다. 제39조(2)는 물품을 실제로 넘겨받은 날부터 2년이라는 외곽 한계를 두되, 계약상 보증기간과 맞지 않으면 예외로 한다. 다만 매도인이 알았거나 모를 수 없었던 부적합을 알리지 않았다면 매도인은 제38조와 제39조를 내세울 수 없고(제40조), 매수인에게 통지하지 못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대금 감액이나 일실이익을 제외한 손해배상은 남는다(제44조).
CISG 제39조(1): 매수인이 물품의 부적합을 발견하였거나 발견할 수 있었던 때부터 합리적인 기간 내에 매도인에게 그 부적합의 성질을 특정하여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매수인은 물품의 부적합을 주장할 권리를 상실한다. (영문 정본의 비공식 번역)
병원 현장은 이 조문이 전제하는 일정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차폐 공사나 전원 증설, 병원 내부 일정 때문에 도착한 화물이 개봉되지 않은 채 몇 주씩 보관될 수 있다.
이때 시계는 양쪽 모두에게 위험하다. 매수인이 화물을 오래 검사하지 않다가 뒤늦게 '보드 통신이 안 되고 검출기 패널에 금이 갔다'고 주장하면, 언제 발견했어야 했는지와 통지가 합리적 기간 안에 이뤄졌는지가 쟁점이 되어 하자 주장 자체가 제한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 결함이라면 설치와 시운전 전에는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결과는 구체적 사정과 준거법 해석에 달려 있으므로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매도인 쪽 위험은 제58조(3)에서 나온다. 매수인은 물품을 검사할 기회를 갖기 전까지 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다만 당사자가 합의한 인도·지급 절차가 그런 기회와 맞지 않으면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잔금 지급을 '최종 검수 완료'에만 묶고 검수 기한을 두지 않았다면, 매수인 측 사정으로 설치가 늦어지는 동안 잔금 청구 시점도 함께 불분명해진다.
미국 QMSR: 설치는 판매의 끝이 아니라 품질기록의 시작
상업적 인수가 끝났다고 규제상 의무까지 끝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는 설치 자체가 연방 품질 규정의 적용 범위 안에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4년 2월 2일 연방관보(89 FR 7496)에 21 CFR Part 820 개정 최종규칙을 공포했고, 이 규정은 2026년 2월 2일부터 품질경영시스템규정(QMSR)으로 시행되고 있다. QMSR은 ISO 13485:2016과 ISO 9000:2015 제3절의 용어 정의를 참조로 편입했다. FDA는 같은 날부터 기존 품질시스템 검사기법(QSIT) 대신 새 의료기기 제조자 검사 프로그램(7382.850)을 쓰고 있다.
수출사가 눈여겨볼 부분은 적용 범위와 '제조자' 정의다. 820.1(a)는 이 규정이 완제 의료기기의 설계, 제조, 포장, 라벨링, 보관, 설치, 서비스에 쓰이는 방법과 시설·관리를 다스린다고 적고 있다. 일부 공정만 수행하는 제조자는 그 공정에 해당하는 요구사항만 지키면 된다는 단서도 붙어 있다. 최종규칙 전문이 설명하듯 종전 품질시스템규정(QS 규정)도 설치를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설치 관리가 QMSR에서 새로 생긴 의무는 아니다.
820.3의 '제조자' 정의는 완제 의료기기를 설계·제조·조립·가공하는 자뿐 아니라 계약 멸균, 설치, 재라벨링, 재제조, 재포장, 사양 개발을 수행하는 자, 그리고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외국 기업의 초기 유통사(initial distributor)를 포함한다.
한국 제조사의 장비를 미국 유통사가 수입해 병원에 설치하고 조정까지 한다면, 그 유통사는 단순한 물류 업체가 아니라 설치 공정에 대해 Part 820 요구사항을 지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미국 유통사 계약서에 넣어야 할 규제 조항을 점검할 때 불만 파일 접근이나 리콜 협력과 함께, 설치 기록의 작성 책임과 보관 위치도 유통 계약과 품질 협약에 넣어 두는 것이 안전하다.
종전 QS 규정에는 설치에 관한 별도 조항(820.170)이 있었고, 설치 절차는 기기마스터기록(DMR)에 담겼다. QMSR에서는 이 구조가 바뀐다. FDA는 최종규칙 전문에서 DMR에 있던 설치 요구사항이 이제 제조자의 의료기기 파일(MDF, ISO 13485 4.2.3항)에 위치한다고 설명한다. 또 결합제품 규정(21 CFR Part 4)을 고치면서 '설치 활동'에 해당하는 ISO 13485 조항으로 7.5.3항을 지목했다.
“종전에는 제품 사양, 제조·측정·모니터링·서비스 절차, 그리고 설치 요구사항이 제조자의 DMR에 포함되었으나, 이제는 제조자의 MDF에 위치하게 된다.” FDA QMSR 최종규칙 전문(89 FR 7496), 비공식 번역
ISO 13485 본문은 유료 표준이므로 7.5.3항의 문언은 원문으로 확인해야 한다. 실무의 출발점은 설치 요구사항, 설치 확인의 합격 기준, 그리고 누가 언제 무엇을 확인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의료기기 파일과 품질기록 체계 안에서 추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 설치 검수 체크리스트와 서명지는 대금 청구 서류이면서 동시에 품질기록이 될 수 있다. FDA는 종전 기기이력기록(DHR) 요구사항의 상당 부분이 ISO 13485 7.5.1항의 기기별·배치별 기록으로 옮겨졌다고 설명한다. 허용 범위를 벗어난 측정값을 그대로 둔 채 서명했거나 설치 절차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한 사실이 드러나면, 검사에서 설치 공정의 관리 수준이 문제 될 수 있다.
EU MDR: '적절한 설치'를 사용설명서가 뒷받침하는 구조
유럽연합 의료기기 규정(MDR, 규정 (EU) 2017/745)도 설치를 시장 출시 조건의 일부로 다룬다.
MDR 제5조(1)은 기기가 정당하게 공급되고 적절히 설치·유지되며 의도된 목적에 따라 사용될 때 이 규정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시장에 출시되거나 사용을 개시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렇다면 '적절히 설치되었다'는 무엇으로 확인하는가. 부속서 I의 일반 안전·성능 요구사항(GSPR) 23.4항은 사용설명서에 담아야 할 정보를 열거하는데, 그중 (k)호가 설치를 다룬다. (k)호가 요구하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기기가 적절히 설치되었고 제조자가 의도한 대로 안전하게 작동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정보
해당되는 경우, 예방 정비와 정기 정비 및 사전 세척·소독의 성격과 주기
소모성 부품의 식별과 교체 방법
기기가 의도된 수명 동안 적절하고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교정 정보
설치·교정·서비스에 관여하는 사람이 겪는 위험을 없애는 방법
유럽 수출 실무에서 이 조항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현장 인수시험 프로토콜의 검사 항목, 절차, 판정 기준(접지 저항, 누설 전류, 출력 허용 범위 등)은 제조자가 기술문서와 사용설명서에 둔 설치 확인 정보와 맞춰 설계해야 한다. 유통사나 병원이 별도 양식을 쓰더라도 사용설명서의 기준을 빠뜨리면 '적절히 설치되었다'는 근거가 약해진다.
반대로 병원이 사용설명서의 설치 확인이나 교정 단계를 건너뛰고 사용을 시작했다면, 사고 조사에서 제5조(1)이 전제하는 적절한 설치·유지·사용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수출사가 설치 확인 기록의 사본을 확보해 두어야 하는 이유다.
일본: 설치관리의료기기와 15년 보존의 책임 사슬
일본은 일부 장비의 설치 관리를 시행규칙에 별도 의무로 적어 두었다. 의약품의료기기등법(약기법) 체계에서 '설치관리의료기기'로 지정된 기기가 그 대상이다.
히가시오사카시의 판매업 허가 안내서는 설치관리의료기기를 설치할 때 조립이 필요한 특정보수관리의료기기로서,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을 막기 위해 그 조립에 관한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후생노동대신이 지정하는 의료기기(시행규칙 제114조의55)로 설명하고, 예로 MRI를 든다. 구체적인 지정 품목은 후생노동성 고시로 확인해야 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도 2013년 『의료기기 해외시장 Brief』 일본편에서 이 개념을 짧게 소개하며 제조판매업자가 설치기준서를 교부해야 한다고 적었다. 현행 의무는 시행규칙 제179조 체계로 정리되어 있으며, 지자체 안내서에 따르면 판매업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자가 설치(제179조 제1항): 판매업자가 직접 설치할 때는 제조판매업자로부터 교부받은 설치관리기준서에 따라 적정한 방법으로 설치를 관리한다.
설치 위탁(제179조 제2항): 설치를 맡길 때는 설치 관리에 관한 보고 조항을 포함한 위탁계약을 맺고, 설치관리기준서를 수탁자에게 교부한다.
담당자(제179조 제3항·제4항): 설치 관리 업무는 필요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 기준서에 따라 수행하게 하고, 필요하면 품목에 맞는 교육훈련을 실시한다.
재판매(제179조 제5항이 준용하는 제114조의55 제2항): 설치관리의료기기를 다른 판매업자에게 팔거나 빌려줄 때는 설치관리기준서도 함께 교부한다.
가장 무거운 부분은 기록 보존이다. 도요나카시와 히가시오사카시 안내에 따르면 설치에 관한 관리, 기준서 교부, 교육훈련 실시 기록은 작성일부터 15년간 보존해야 한다(제179조 제5항이 준용하는 제114조의55 제9항). 같은 안내에서 특정보수관리의료기기가 아닌 고도관리의료기기의 양수·판매 기록 보존 기간이 3년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도요나카시 안내(비공식 번역): 설치관리의료기기를 판매·대여한 경우 ① 설치에 관한 관리 기록, ② 판매업자·대여업자 또는 설치 수탁자에게 설치관리기준서를 교부한 기록, ③ 설치하는 사람에 대한 교육훈련 실시 기록을 작성하고, 작성일부터 15년간 보존해야 한다.
한국 제조사에게 이 사슬이 뜻하는 바는 이렇다. 설치관리기준서를 교부하는 주체는 일본의 제조판매업자지만, 기준서에 들어갈 설치 절차와 확인 항목은 장비를 설계한 한국 제조사가 가장 잘 안다. 따라서 일본 파트너와의 계약에서 기준서 원안과 개정본을 누가 작성하고 승인하는지, 현지 설치자 교육을 누가 제공하는지, 15년 보존 기록에 한국 본사가 접근할 수 있는지를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좋다. 영문 설치 매뉴얼만 넘기고 끝내면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
매출 인식의 문: 설치·검수 완료와 고객 승인(K-IFRS 제1115호)
네 번째 문은 회계다. 수출 장비의 매출 시점은 운송 조건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설치 약속과 검수 조항을 함께 봐야 결정된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제1115호 '고객과의 계약에서 생기는 수익'은 다섯 단계로 수익을 인식한다.
고객과의 계약 식별
계약에 포함된 구별되는 수행의무 식별
거래가격 산정
거래가격을 각 수행의무에 상대적 개별 판매가격 기준으로 배분
수행의무를 이행할 때(또는 이행하는 대로) 수익 인식
이 기준에서 수익은 고객이 약속된 재화나 용역에 대한 통제를 얻는 시점에 인식된다. 통제란 자산의 사용을 지시하고 자산에서 남은 효익의 대부분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면 장비 공급과 현장 설치는 하나의 수행의무인가, 둘인가. IFRS 15 적용사례 11이 이 판단을 여러 사례로 보여 준다. KPMG 해설서의 정리에 따르면, 장비와 별도로 식별되는 설치 용역을 함께 제공하는 사례 11C와 11D는 모두 수행의무를 둘로 본다. 11D는 고객이 계약상 반드시 그 기업의 설치 서비스를 써야 하는 경우인데, 이런 계약상 제한만으로는 결론이 바뀌지 않는다. 반대로 설치 용역이 대상을 유의적으로 고객 맞춤화하거나 변형하는 사례 11B에서는 하나의 수행의무가 된다.
국내 회계법인 해설은 여기서 기준 체계를 구분한다. 일반기업회계기준(제16장)은 설치조건부 판매를 원칙적으로 설치와 검수가 끝난 시점에 인식하고, 설치가 단순하거나 검수가 형식적인 경우에만 납품 시점 인식을 허용한다. 반면 K-IFRS 제1115호는 수행의무 단위로 보므로 장비와 설치가 구별되면 각각 다른 시점에 인식할 수 있다. 수출 거래의 통제 이전은 Incoterms 등 거래 조건에 따라 판단하며, DAP·DDP라면 도착 시점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실무 해설이다.
고객 승인 조항은 어떻게 다루는가. 핵심은 IFRS 15 문단 B83~B85다. 승인 조항은 사양 충족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성격이 갈린다.
형식적 승인(B84): 계약상 사양에 맞는지를 기업이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고객 승인은 형식에 불과하고, 명시적 승인 전에도 수익을 인식할 수 있다. KPMG 해설서는 크기·무게 같은 객관적 사양을 예로 들고, 유사 계약의 경험도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출하 전 공장 인수시험(FAT) 결과와 표준 시험 데이터로 사양 충족을 보일 수 있는 장비라면 이쪽에 가까워질 수 있다.
실질적 승인(B85): 사양 충족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 공식 승인 전에 고객이 통제를 얻었다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 KPMG 해설서의 예는 고객의 새 생산라인에서 작동해야 하는 개조 제품이다. 병원의 차폐·전원·냉각 설비나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과 연동해야만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비라면 이쪽에 가깝다. 이때 미리 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은 매출이 아니라 선수금(계약부채)으로 처리한다.
결산 시점의 컷오프가 여기서 갈린다. 12월 28일에 장비가 DAP 조건으로 해외 병원에 도착했지만 검수는 이듬해 1월 15일에 끝났다고 하자. 승인이 실질적이라면 장비 매출은 다음 해 1분기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승인이 형식적이고 장비와 설치가 별도 수행의무라면 장비 매출은 도착 시점에, 설치 매출은 설치 완료 시점에 나뉜다. 국내 회계법인 해설은 설치 완료 전에 매출을 먼저 잡으면 매출 과대 계상과 법인세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외부감사에서 수정 권고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장비 업계에서도 이미 겪은 문제다. 2017년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새 수익인식 기준 도입을 앞두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계에서는 출하, 고객사 라인 설치, 안정 가동 중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할지를 두고 혼선이 있었고, 수출 장비는 계약 금액 일부가 설치 후 가동을 조건으로 남는 구조여서 고민이 더 컸다. 의료장비 수출사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납품 완료와 사용 준비: 네 가지 기준 비교
수출 의료장비의 검수 과정에서 작동하는 네 가지 기준을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 비교 항목 | 상업적 인도 (Incoterms 2020) | 국제 매매법 (CISG) | 규제 기록 (미국·EU·일본) | 회계 (K-IFRS 제1115호) |
|---|---|---|---|---|
| 규범의 성격 | ICC 규칙, 계약에 편입해 쓰는 당사자 합의 | 다자 조약, 배제하지 않으면 체약국 간 매매에 적용 | 각국 의료기기 법령과 품질경영시스템 요구사항 | 국제회계기준을 채택한 기업회계기준서 |
| '끝'을 정하는 기준 | 지정 목적지에서 도착 운송수단 위 하역 준비 상태로 처분 아래 놓인 때 (DAP·DDP) | 인도 후 실행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 검사, 발견 후 합리적 기간 내 통지 (교부일부터 최장 2년) | 제조자 기준(사용설명서, 의료기기 파일, 설치관리기준서)에 따른 설치 확인과 기록 | 수행의무별 통제 이전 시점, 실질적 승인 조항이면 공식 승인 시점 |
| 설치를 다루는가 | 다루지 않음, 계약에 별도 조항 필요 | 설치 용역이 계약의 주된 부분이면 적용 제외 가능 (제3조(2)) | 다룸 (미국 820.1, EU 부속서 I 23.4(k), 일본 시행규칙 제179조) | 구별되면 별도 수행의무, 유의적 맞춤화면 하나의 수행의무 |
| 놓쳤을 때 생기는 일 | 인도 후 손상 위험과 비용 부담을 둘러싼 다툼 | 통지가 늦으면 부적합 주장이 제한됨 (제40조·제44조 예외) | 검사 지적, 설치 적정성 입증 곤란, 일본 기록 의무 위반 소지 | 매출 기간 귀속 오류, 외부감사 수정 권고, 법인세 부담 변동 |
| 남길 문서 | 운송서류(B/L·AWB), 도착·인도 확인서 | 검사 기록, 하자의 성질을 특정한 서면 통지 | 설치 확인 기록, 사용설명서 기준 점검표, 기준서 교부·교육 기록(일본) | 인수 확인서, 수행의무 판단 메모, 컷오프 근거 |
FAT에서 SAT까지: 남겨야 할 문서와 계약서 점검 목록
네 개의 문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도구가 공장 인수시험(FAT)과 현장 인수시험(SAT)이다. 두 시험의 기록을 매매계약의 마일스톤 조항과 맞추면 같은 서류가 계약, 규제, 회계 증빙을 함께 맡는다.
검증 소프트웨어 업체 Kneat의 해설은 규제 대상 제조설비의 표준 흐름을 사용자 요구사양(URS), 설계 적격성 평가(DQ), 공급자 선정, FAT, 운송과 설치, SAT, 설치·운전·성능 적격성 평가(IQ·OQ·PQ) 순서로 정리한다. FAT는 출하 전 공급자 시설에서 승인된 사양에 비춰 하는 시험이고, SAT는 설치 후 현장 유틸리티와 연동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PQE Group 해설은 SAT를 장비가 양호한 상태로 인도되었고 운송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문서로 보이는 단계로 설명하며, 의약품 GMP 부속서 15(EU GMP Annex 15)의 '현장 수령 후 SAT로 FAT를 보완할 수 있다'는 문언을 인용한다.
다만 이 흐름은 의약품·바이오 제조설비 검증에서 나온 관행이다. 병원에 의료기기를 설치하는 거래에 그대로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므로, 문서 구조를 빌려 쓰되 누가 시험을 실행하고 서명하는지는 계약으로 정해야 한다. 같은 사고방식은 수리 프로브의 단위별 인수 증거를 요구할 때나 eCOA 계약 전 현지 인수 책임을 나눌 때에도 쓰인다. 기록되지 않은 시험은 하지 않은 시험으로 취급되고, 서명되지 않은 검수는 끝나지 않은 검수로 다퉈진다.
Kneat는 FAT와 SAT 모두 사전 승인된 프로토콜, 실행 기록, 미결 사항 목록(펀치리스트), 공식 서명 패키지를 남겨야 한다고 정리한다. 의료장비 수출에 맞춰 풀면 다음 네 가지다.
사전 승인된 검수 프로토콜: 시험 시작 전에 제조사와 병원 의공학 담당이 함께 승인한 문서. 항목별 시험 절차, 계측기 교정 유효기간, 합격·불합격 기준을 수치로 적는다.
실행 기록과 측정 로그: 현장에서 실제로 잰 전원 전압, 접지 저항, 누설 전류 같은 원시 측정값과 장비 시스템 로그.
펀치리스트: 환자 안전과 진단 성능에 직접 영향이 없는 경미한 미비점(외장 커버 흠집 등)을 기록하고, 누가 언제까지 조치할지 합의한 목록. 사소한 미비점 때문에 전체 인수가 멈추는 일을 막는다.
최종 인수 확인서: 계약에서 지정한 서명 주체(병원 의공학 책임자, 설치를 수행한 유통사나 제조사 엔지니어 등)가 서명한 문서. 이 서명일을 승인일, 보증 기산일, 잔금 청구 시점의 기준으로 쓰려면 계약서에 그렇게 명시해야 한다.
sequenceDiagram
autonumber
actor M as 한국 제조사
actor C as 국제 운송사
actor D as 현지 유통사·설치 업체
actor H as 해외 병원 의공학팀
Note over M: 공장 단계
M->>M: 승인된 사양 기준 공장 인수시험(FAT)
M->>C: 수출 포장과 출하 (DAP 조건 예시)
C->>H: 지정 목적지 도착, 하역 준비 상태로 인도
Note over C,H: Incoterms상 인도와 위험 이전<br/>CISG 검사·통지 기한 진행
D->>H: 검사실 반입과 유틸리티 결선
D->>H: 현장 인수시험(SAT) 프로토콜 실행
Note over D,H: 미국은 QMSR 품질기록으로 설치 기록<br/>일본은 설치관리 기록 15년 보존
H-->>D: 펀치리스트 합의
H->>M: 최종 인수 확인서 서명
Note over M: 계약상 승인일, 잔금 청구, 보증 기산<br/>회계상 통제 이전 판단 근거의료장비 수출에서 '물건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거래가 끝나지 않는다. 하역 서명, 현장 인수시험 기록, 규제 기록, 회계상 승인 근거가 같은 날짜와 같은 문서를 가리킬 때 분쟁과 재작업이 줄어든다.